역사(20325)

10-1. 지중해 세계를 통일한 로마

도입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마는 왕정, 공화정, 제정 등 다양한 정치 체제를 가졌던 국가였습니다.
로마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로마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이 있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영화 '벤허'>

로마는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 교훈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로마의 정치사를 중심으로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전개

  1. 로마 공화정의 성립과 발전

그리스가 폴리스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을 시기인 기원전 8세기에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작은 도시 국가 로마가 세워졌습니다. 기원전 6세기 말 귀족들이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하였습니다.

다음 영상을 보고 로마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공화정 초기에는 귀족들이 원로원(최고 의결 기관) 집정관(consul, 로마 공화정 시대의 최고 관직)을 독점하였습니다.
그러나 평민들이 중장 보병으로 정복 전쟁에 참여하여 세력을 키우면서 평민들의 정치 참여 요구가 커졌습니다. (아테네랑 비슷한데요?!)

그 결과 기원전 5세기 초에 평민회(민회)가 만들어졌고, 평민의 대표인 호민관(tribunus)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초에는 평민회의 결정이 원로원의 승인 없이 로마의 법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더 알아보기 1)

로마의 공화정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라는 세 가지 정치 형태는 로마 공화국에서 한데 모이게 되었다. ...... 집정관들이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로마의 정치 형태는 군주정처럼 보인다. 원로원의 권위는 일종의 귀족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민의 힘을 놓고 본다면 민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폴리비오스, 『역사』-

Q1) ㄱ에 들어갈 명칭은 무엇일까요?

A1) 호민관

평민들의 정치적 권리가 확대되자 로마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도 강해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로마는 기원전 3세기 무렵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였습니다.

이후 로마는 지중해 무역을 주도하던 카르타고와 전쟁을 치렀습니다(포에니 전쟁).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지중해 세계를 장악하였습니다.

더 알아보기 2)

알렉산드로스에게 무너진 페르시아, 한니발에게는 무너지지 않은 로마

(정리 및 보충에 들어갈 영상이지만, 포에니 전쟁과 관련된 로마 성장의 이유가 담긴 좋은 영상이어서 따로 ‘더 알아보기’에 구성하였습니다.)

로마의 기초를 세운 로물루스는 적들도 받아들여서 시민단을 키워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이야말로 로마인의 힘과 명성이 퍼지는 근본이 되었습니다. 그를 모범으로 우리 조상들은 시민권 수여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투스쿨룸인과 라누비움인이, 사눔비인과 볼스키인과 헤르니키인이 로마 시민이 되었습니다.

-키케로, 발부를 위한 연설-


*시민권 로마 시민은 제국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무역하는 등 로마 제국의 보호를 받았으며, 군 복무의 의무를 졌다. 로마는 공화정 시기부터 정복지의 주민들에게 완전한 시민권, 또는 정치 참여가 제한된 반시민권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3세기 무렵에는 제국 내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Q1) 페르시아와 다르게 로마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A1) 시민권을 바탕으로 한 로마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후 로마는 계속된 정복 전쟁을 통해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복지의 값싼 곡물이 대량으로 로마에 들어오고, 소수의 귀족이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아
대농장
(라티푼디움)을 경영하면서 자영 농민이 몰락하였습니다.

호민관인 그라쿠스 형제는 자영 농민의 몰락을 막기 위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하였습니다.

<그라쿠스 형제>

다음 영상을 보겠습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2.제정(帝政)의 시작과 로마의 평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한 뒤 로마는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군인 정치가들까지 등장하면서 로마의 혼란은 계속 되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는 카이사르(시저)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독재에 반대한 반대파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카이사르>

<카이사르의 최후>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옥타비아누스는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의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다음 영상을 보겠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는 공화정을 유지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하는 등 사실상 황제와 같은 권리를 가졌습니다.
사실상 황제가 된 것이죠. 이때부터 황제가 국가를 다스리는 로마의 제정이 시작됩니다. (기원전 27)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그 후 로마는 약 200년간 ‘로마의 평화(Pax Romana)’로 알려진 번영을 누렸습니다.

특히 다섯 명의 훌륭한 황제가 집권한 ‘오현제 시대’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최대 영토를 확보하였습니다.

로마는 새로 정복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여 사회 통합을 도모하였습니다.
제국 곳곳에는 도로망이 깔리고 화폐와 도량형이 정비되어 상공업과 국제 무역이 활발해졌습니다.

정리

로마(Rome)

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 귀족들이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함
⇾ 귀족들이 원로원집정관을 독점
⇾ 평민들이 중장보병으로서 전쟁에 참여함
⇾ 평민들이 입김이 쌔짐
평민회(민회) 설치하고 평민회에서 호민관 선출


② 포에니 전쟁과 그 결과

- 로마 vs 카르타고
⇾ 로마의 승리
⇾ 로마가 지중해 일대를 장악함
⇾ 정복지에서 노예와 값싼 곡물이 로마에 들어옴
⇾ 소수 귀족들이 노예를 이용한
대농장(라티푼디움) 경영
⇾ 자영 농민의 몰락

-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내가 나서겠다!!)
⇾ 자영 농민의 몰락을 막기 위해 개혁을 시도
⇾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


③ 제정(帝政)의 시작

-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실패 이후, 로마의 혼란 지속
⇾ 카이사르(시저)가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권 장악
⇾ 암살당함

-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집권
⇾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음
⇾ 공화정 유지를 주장했지만, 행정권 및 군사권은 아우구스투스가 장악
⇾ 제정의 시작
⇾ 로마의 평화(Pax Romana)

- 오현제의 활동, 정복민에게 시민권 부여

보충, 심화

<영화 '글래디에이터' 리뷰>

<포에니 전쟁>

<팍스 로마나 전쟁>

내용구성: 조중훈(대구 능인고)